인생은 서로 고마워서 산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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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제나 연애시절이나 신혼때와 같은 달콤한만을 바라고 있는 남녀에게 우리 속담은 첫사랑 삼년은 개도 산다고 충고하고 있다. 사람의 사랑이 개의 사랑과 달라지는 것은 결국 삼년이 지나고부터인데 우리의 속담은 기나긴 자기수행과 같은 그 과정을 절묘하게 표현한다.
열 살줄은 멋 모르고 살고 스무줄은 아기자기하게 살고 서른줄은 눈 코뜰 새 없어 살고 마흔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줄은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예순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줄은 등 긁어주는 맛에 산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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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철 모르는 시절부터 남녀가 맺어져 살아가는 인생길을 이처럼 명확하고 실감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? 자식 기르느라 정신 없다가 사십에 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지내며 소 닭보듯이, 닭 소 보듯이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고 서로가 웬수 같은데 어느날 머리칼이 희끗해진 걸 보니 불현 듯 가여워진다.
그리고 서로 굽은 등을 내보일 때쯤이면 철없고 무심했던 지난날을 용케 견디어준 서로가 눈물나게 고마워질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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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젠 지상에 머물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쭈글쭈글해진 살을 서로 긁어주고 있노라니 팽팽했던 피부로도 알수 없었던 남녀의 사랑이기보다 평화로운 슬픔이랄까, 자비심이랄까 그런것들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.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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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십대는..... 어디를 향해서 붙잡는 이 하나도 없지만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바람부는 날이면 가슴 시리게 달려가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친듯이 가슴이 먼저 빗속의 어딘가를 향해서 간다.
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늙어 버리는 줄 알았는데 겨울의 스산한 바람에도 온몸엔 소름이 돋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육체는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지만 시간을 초월한 내면의 정신은 새로운 가지처럼 어디론가로 새로운 외면의 세계를 향해서 자꾸자꾸 뻗어 오르고 싶어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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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이를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확인하고 싶지 않은 나이 체념도 포기도 안되는 나이. 나라는 존재가 적당히 무시 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시기에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와버린 나이. 피하에 축적되어 불룩 튀어나온 지방질과 머리 속에 정체되어 새로워지지 않는 낡은 지성은 나를 점점 더 무기력하게 하고 체념하자니 지나간 날이 너무 허망하고 포기하자니 내 남은 날이 싫다하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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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던 일 접어두고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을 ...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머무른다. 그래서... 나이를 먹으면 꿈을 먹고 산다나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난 싫다.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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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십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. 그것은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젊은 날 내안의 파도를... 그 출렁거림을 잠재우고 싶었기에.... 사십만 넘으면 더 이상의 감정의 소모 따위에 휘청 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기에. 이제 사십을 넘어 한살 한살 세월이 물들어가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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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무지 빛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색깔로 나를 물들이고, 갈수록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람의 유혹엔 더 없이 무력하기만 한데...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정숙함을 가장한 완전한 삶의 자세일 뿐일 것 같다. 마흔살이 지나 이제서야 어떤 유혹에든 가장 약한 나이가 사십대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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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... 더없이 푸른 하늘도.... 회색 빛 높이 떠 흘러가는 쪽빛 구름도 창가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 끝의 라일락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내 품어야 할 유혹임을... 끝 없는 내 마음의 반란임을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 같이 마시고 싶고.... 늘 즐겨 듣던 음악도 그 누눈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이 만나고픈....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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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소한 것 까지도 그리움이 되어 버리고 아쉬움이 되어 버리는 거 결코 어떤 것에도 만족과 머무름으로 남을 수 없는 것이 슬픔으로 남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
이제 나는 꿈을 먹구 사는게 아니라 꿈을 만들면서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내 진심으로 사랑을 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그런 나이로 진정 사십대를 보내고 싶다... 사십대란 불혹이 아니라 흔들리는 바람이고 끝없이 뻗어 오르는 가지이다...
-좋은글에서-
연주곡;virgin`s lullaby / Malcom Archer(이정옥 오카리나연주)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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